‘심규선 (Lucia)’ [몸과 마음]
눈물이 녹아서 밖으로 흐르면, 그것은 차라리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안으로만 흘러 고이는 눈물도 있다.
<소년에게>의 가사처럼 우리는 '우는 법을 알기도 전에 참는 법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줄곧 내밀한 슬픔의 통로가 되는 노래를 하려고 했다. 노래가 물길을 틔워주기만 하면
아무리 '오래 억눌러온 그것'이라 해도 '제방을 넘어 범람'하곤 하였다.
그래서 내 노래는 자주 젖어있었다. 쉬운 방법을 몰라 고단했지만 나는 적어도 가치 있고자 했다. 혹독하여도 의미가 있었고 지난 모든 음반을 통해 기꺼이 했다. 그렇게 매년, 8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이룬 것은 많지 않으나 당신과 나 사이에 이토록 분명한 연대가 쌓아올려진 것이 놀랍다. 우리가 노래를 사이에 두고 그토록 서로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음이 놀랍다. 그래서 쓰고 또 계속 불렀다. ‘만신창이처럼 비틀대도’ 당신의 앞에 다다르기를, 당신의 ‘안’을 계속 두드리길 바라면서.
<몸과 마음>을 작업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치유를 생각했다.
치유-함과 치유-받음 중 어느 한 쪽을 고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지만,
오랫동안 이 일에 살아오면서 그 둘이 완전히 같은 것임을 깨달았다.
나의 노래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해준 당신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은 다정하게도 나를 향해, ‘노래해줘서 고맙다’ 고 말해 주곤 했다. 그 말의 온기로 몇 번이나 진창에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 다정함에 오래 부끄러워도 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신을 향해 노래들을 외쳐 부르면서 당신 이상으로 내가 더 많은 눈물을 쏟았고, 오히려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가 서로를 참 오래 안아 주었음을 말이다.
이제 고였던 눈물을 쏟아낸 자리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
우리는 빈 가슴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반드시 열망할 것을 찾아야만 한다. 매일 다른 쪽을 향해 서로 멀어지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게끔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당신이 이 나른한 봄밤에, 열기에 들뜰 만큼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장면을 꿈꾼다.
‘구름 위를 부유하며 중력을 잃은 채’ ‘두 발을 땅 위에 디디고 서기도 힘들’ 정도로 가벼워진 마음으로 말이다. 당장 눈앞에 사랑할 사람이 없다면, 적어도 그 마음만은 활짝 피어 있을 수 있도록. ‘바로 이게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왔을 때, 적어도 머뭇거리지는 않을 수 있도록. 괴로워하는 연인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을, 온 힘으로 그렸다. 그러자 내 몸과 마음도 충만했다.
몸과 마음이란 의심할 여지없이 나 자신을 이루는 것들이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진정한 의미의 나 자신일 리 없음에 착안하였다. 이 음반의 제목은 <몸과 마음>이지만 사실은 그 사이의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 또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명백히 존재하지만 이름 붙여진 적 없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 심장 박동이 아니라 그 ‘박동 소리’ 안에 존재하는 것. 내 노래 안에도 그 무엇이, 미약하게나마 깃들었기를 바란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나의 노래와 당신이 ‘화살처럼 서로를 향해 쏘아진 채 겨우 여기 다다랐다’ 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노래가 들려지길 꿈꾸진 않는다. 필요한 당신에게 온전히 가닿기를. 필요한 순간에 온전히 쓰이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고, 그것으로 나에게 이미 충분하다.